* 졸라 센치한 뻘글이고 어차피 제 블로그에 댓글 안달리는 건 제가 제일 잘 알지만 그래도 부끄러우니까 댓글은 막아놓을거예여! 왜 막냐면 내맘이야!!!
1.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그걸 스스로에게 적용시키기는 쉽지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런 류.
뭘 하든 일단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안돼서, 복수전공으로 사학을 해볼까, 하고 세계사 수업을 들어갔을 때, 정말 사학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부터 교수님이 친절돋게 설명해 주신 과목이어서 다행이었지(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대부분의 사학과 수업은 그 교수님 수업처럼 오픈된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학과는 정말 레알 자기들만의 리그적 분위기가 무척 강해서, 타과 학생이 사학과 수업 들으면 사학과 교수님들이 점수 안 준다는 얘기가 농담 같은 진담으로 돌았다.), 아니었으면 아마 난 수업 듣다가 손을 놨을지도.
어쨌거나 그런 수업에서 레포트가 2개가 나왔다. 당연하게도 내 세계사의 지식 범위는 끽해봤자 수능 때 배우지도 않았으면서 세계사 치겠다고 난리를 치면서 혼자 아둥바둥하며 공부했던 딱 그 수준이었다. 레포트 제출 날짜와 주제가 정해졌다. 일단 교수님을 붙잡고 물어봤다. 레포트 형식이라던가, 내용이라던가. 제출 날짜가 2주 정도 남았을 때부터 도서관에서 책을 쓸어댔다. 모르니까 일단 다 훑어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수업 시간이 워낙 아침 일찍이어서 수업 듣다가 졸기도 엄청 졸았지만, 레포트 준비 할 때는 정말 정줄을 놓는 기분이었다. 레포트 제출 날짜가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그 때는 다른 전공 수업이나 학과 수업도 같이 듣고 있었어서 책 대출 한도 권수를 다 채운 상황이었다. 물론 자료는 그보다 더 들어갔어야 했다. 머리를 굴린 끝에 학교 컴퓨터실에서 노트북을 빌린 다음 도서관으로 갔다. 그리고 도서관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책을 쓸어다가 옆에다 쌓아놓고 몇시간에 걸쳐 읽으면서 참고자료가 될 부분을 체크하고 도서관 폐관시간까지 앉아서 레포트를 썼다.
두 개의 레포트가 전부 다 그렇게 완성됐다. 학점은? 좋은 편이었던걸로 기억한다. A였던가 A+이었던가.
그 레포트를 그렇게 준비하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미흡하고. 물론 당연히 그렇겠지. 학부생에, 심지어 비전공자의 시점에서 쓴 레포트니까.
2.
사학과 레포트때와 비슷한 경험이 생각해 보면 무척 많다. 교토에서 수료 논문을 쓰던 때도 그랬고, 국문과 수업을 들으면서 매주 발표수업에 맞추어 작품분석을 할 때도 그랬고, 이야기 창작 연계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조토론 준비를 할 때도 그랬고, 전공의 심화 발표수업을 준비할 때도 그랬다. 사실 전공의 발표수업은 정말 매번 준비할 때마다 왜 이렇게 밖에 못하나 싶은 부족함에 밤샘 작업을 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학점이 잘 나와도, 그게 내 레포트나 발표가 잘 되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졸업하고 난 지금 내가 왜 학기중에 물어보질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교수님께 진짜 진지하게 내 발표에 대해 물어보는 거였다. 내 발표나, 레포트나, 기말 시험 답안지 등에 대해.
항상 나는 내가 나를 판단할 때 어딘가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자존감이 낮은가 생각해 보면, 사실 그 반대라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결론이 내려오곤 한다. 내 자존감이 높아서, 그 자존감에 맞는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것이 내 목을 조르는 기분이 든다.
3.
교토에서 수료 논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걸 쓸 때의 나도 정말 정신적으로 절박한 상황이었다. 내가 맨 처음에 세워놨던 논문의 플랜과, 내 자료 처리 속도와 능력, 그리고 내가 찾을 수 있는 자료 한도 내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정보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었다. 조바심이 났다. 가설은 언제나 뒤엎어 질 수 있기에 가설이라는 걸 알지만, 자료가 가설을 역으로 입증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 밤새 논문을 쓰다가 뒤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역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있으니 다행이었지, 사실 입증이라기 보단 어디까지나 추정과 추정의 연속같은 논문이었다. 지도교수님과 상의하고 논문 초고 발표일에 도저히 이걸 발표하고 교수님들 앞에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지옥같은 심경이어서 그 날은 아예 학교를 빠지고 도서관에 처박혀서 미친듯이 자료만 찾아댔다. 중간 발표일에도, 최종 논문 발표일에도 그랬다. 내 논문의 완성도에 내가 완전히 실망해서 아예 때려칠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을 하질 않았다. 죽어도 마무리는 짓자는 생각으로 논문을 썼다. (사실 그렇게 해서 수정받고 제출하고 난 뒤의 완성본은 두 번 다시 읽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지도교수님과 면담을 한 차례 한 다음에 수정본을 제출하고, 그리고 수료식 당일까지는 지도교수님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수료식 날, 기본 식이 끝난 다음 홀에서 연수생 전원과 교직원들과 유학생 과에서 지원해 주던 분들끼리 해서 가벼운 만찬회가 있었다. 싫어도 그 날은 지도 교수님과 마주쳤어야 했다. 지도 교수님은 정말 전형적인 교토 토박이(=말을 스트레이트로 안하는 타입)셨다. 논문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물론 일본인 특유의 돌려말하기에 교토 사람들 특유의 그 절대로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빙빙빙 에둘러 말하기 콤보가 작렬해서 절대로 험하게, 딱 짚어서 말하진 않았지만 그걸 감안해서 들었던 건 논문의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점과, 참고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후자는 뭐, 내가 원하는 자료를 찾기엔 내 능력이 하염없이 부족했다는 자기위안이라도 됐지만, 전자는 정말 어떻게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중에 한국 돌아가서 수정해 보라고도 얘기해 주셨지만,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일본에서, 교토대학 지하 서고까지 뒤져가면서 자료를 찾고 그걸로 논문을 쓰려고 해봤어도 나온 결과가 그거였는데, 한국에 돌아가서 저걸 다시 붙잡을 자신이 없었다. 내 능력의 미흡함이 절실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아직까지도 잊지를 못한다. 그 때 들었던 얘기는. 완성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보다도, 이렇게밖에 못했다는 생각이 너무 컸다.
4.
장황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은 것 같지만, 요점은 이거다.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하고자 한다. 이게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지 머리로는 아는데 그래도 그러고 싶은 거다.
모른다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이 끼치는 영향이 무서운 거다. 내 능력을 믿고 싶어서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해도, 어느 순간 퍼뜩 고개를 드는 건 나 이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고, 내가 마주쳐야 할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5.
다시 교토 유학때 얘기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워낙 이 때가 내 안의 '세상'이 한바퀴 뒤집혔던 때라 어쩔 수 없는 듯.
같은 코스에는 아시아 권 뿐 아니라 유럽권 애들도 많았다. 얘기하다 보면 참 재밌기도 했다. 나라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생각은 다 다른 법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보면 그 차이가 은근하게 느껴지는 게 재밌었다.
아무튼, 그 때 나보다 생일이 한 달 정도 빠른 나랑 동갑인 애도 있었다. 나이대들이 다 고만고만했지만, 정작 나랑 딱 같은 나이대는 별로 없기도 했다. 폴란드에서 온 여자애였다. 사교성도 좋고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는 애였다. 일본어는 뭐 당연히 잘했고. 유럽권의 특권 같은 거였지만 영어도, 폴란드 어도, 프랑스어도 잘했다. 플러스 알파로 나중에 알았지만 러시아 어도 할 줄 알았고. 그러니까 5개 국어가 네이티브 급인 셈이었다. 워낙 라틴계의 언어는 비슷비슷하다 보니,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새삼 충격은 충격이었다. 어떤 게?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게. 그것도 그렇게 가까이에.
6.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신기한 건, 나 외의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그 사람들의 능력은 눈에 들어온다. 모 님은 뭘 잘하고, 모 님은 어떤 걸 잘하고, 모 님은 저런 것도 할 줄 알고. 나 빼고는 다, 저마다 뭔가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게 보인다. 특출나게 잘 하는 사람도 개중에는 존재하고, 그건 아닌데 얘기하다 보면 '어...?'하며 나는 전혀 모르는 무언가를 너무도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표현이 무진장 진부한데, 원석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저 사람은 저런 원석을 갖고 있고, 저 사람은 이런 보석을 갖고 있고, 그런게 보인다.
그리고 나를 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본다.
그 때 느끼는 좌절감이라던가, 내가 갖고 있는 게 너무도 부족하다는 생각은 어떻게 떨칠수가 없는 거다.
남들에게는 괜찮아, 님은 이런걸 잘 하잖아. 잘 될거야, 라고 얘기할 수 있으면서.
정작 나한테는 그게 안 되는 거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능력이라고 할 법한 게, 너무 흔해 빠진 것 같아서.
내 주변에만 둘러봐도 그렇게 반짝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바깥엔 얼마나 많을까.
그걸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내가 그 사람들과 나란히 놓여졌을 때,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 가치가 없다는 게 들켜버릴까봐.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는 게, 내가 포장해서 얘기한 것에 훨씬 못미친다고 보일까봐.
해가 밝아서 낮에 달이 안보이는 것 처럼, 달이 밝아서 별이 안보이는 것 처럼, 아니면 거리의 빛이 너무 밝아서 밤하늘의 별이 안보이는 것 처럼, 그렇게.
7.
주변 사람들을 좋아한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 그렇게 특별한 것도,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닌데 그걸 잘 한다고 얘기해 주고, 위로해 주고, 조언해 주고, 격려해 주고, 잘 될거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것만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아직까지 계속해서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것 만은,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은.
그러니까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마저 없었으면 진작에 다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 자존심이라는 것 때문에 그것도 못하고, 그러면서 계속 속으로만 썩어들어 갔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다. 만나서. 알고 지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얼마 전에 너무 속상하고 힘들어서 울면서 엄마랑 얘기하면서, 오빠가 보고싶다고 통곡을 했던 적이 있다. 엄마가 그런 날 보면서 그러더라, 막내는 어쩔 수 없다고.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언제까지고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존재가 늘 있어줘서, 그래서 어딘가 어린애 같은 구석이 없어지질 않는 것 같더라. 언제까지고 어린애일 수는 없는데, 어린애에서 벗어나는게 쉽지가 않다. 어쩌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들어 어리광이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정신적으로 안정적인 때를 벗어나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8.
바로 어른이 되자고는 스스로에게도 말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조금씩만이라도 어리광을 줄이자고 밖엔.
내 능력에 대해선,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좀 느슨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느슨해 지는지 모르겠다. 하도 조이기만 해서, 푸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JET 프로그램 준비중입니다. 이 쪽이 사실 준비하면서 그래도 마음은 편하네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