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길게는 안쓸듯.
바이런의 리오넬 폰 하넨이 세스티나를 만났을 때, 그는 그녀가 어디에나 흔히 있는 개척가문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은 가문명을 먼저 입에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가끔은 있었다. 그녀 역시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 가문명이 아닌 자신의 이름만을 간단하게 얘기했을 뿐이어서, 리오넬은 기껏 해 봐야 신대륙의 개척가문 주제에 뭐 그리 숨길게 있냐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래서 여느 개척 가문들을 대하듯 대했을 때, 같이 왔던 총사와 스카우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지는 것을 보면서도 별 생각 없이 무시하고 넘겼다.
실력은 확실히 좋았다. 신대륙은 바이런 이상의 위험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곳. 그곳에서 살아남아 개척을 진행하고 있는 이들다운 실력이었다. 파렐의 시커먼 속을 혼자 해결하는 것이 버거웠던 리오넬에게는 좋은 협력자가 될 수 있는 상대들이었다. 새하얀 드레스가 금발과 잘 어울리는 가느다란 체구의 워록은 눈하나 깜짝않고 리오넬을 비롯한 바이런의 사람들의 요구조건을 해내었다. 그리고 바이런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던 시계탑 마저도 조사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쯤엔 리오넬의 마음 속에선 그녀와 그 가문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는 꽤나 높아져 있었다.
시계탑에 관한 자세한 보고를 파렐보다도 리오넬이 먼저 접했을 때, 리오넬은 안심하고 한 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바이런의 썩은 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말라갈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물이 들어오겠지. 그 때면 피차 또 바빠질 것이었다. 그 전까진 그들과 함께 신대륙도 돌아보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여동생을 보러 본국을 가는 것도 좋겠지. 그 결심을 전했을 때 세스티나는 말없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인사를 한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항구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세스티나가 멈춰서며 리오넬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그녀의 풀네임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렇군. 내 쪽에선 따로 이제와서 소개할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리오넬은 다 밝혔으니까."
세스티나가 쿡쿡, 웃으며 돌아섰다. 오후의 바이런의 햇살을 등진 금발이 눈부시게 빛났다. 발그레한 입술이 달싹이며 그 틈으로 언제나의 낭랑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세스티나 엘레인 폰 슈타인베르그."
".... 뭐?"
리오넬은 순간 자신이 들은 말이 환청같아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추어 섰다. 그 반응을 지켜 본 세스티나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며 오묘한 미소를 자아내었다.
"왜?"
"....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해서."
"얘기 못 들었나봐? 본국의 슈타인베르그 가가 신대륙에 진출했다는 거."
지나가는 소문처럼 들은 기억은 있었다. 왕립 마법사단의 엘리트들이 단장의 개인적인 개척 인원 모집에 벌떼처럼 모여들었다는 얘기도, 국왕 직속 총사대인 제3사단의 단장을 존경하는 수많은 총사들이 단장이 개인적으로 외손녀를 도와줄 총사를 모집했을 때 본국의 약속된 장래들을 버리다시피 하며 지원했다는 얘기도. '희대의 천재' 루드비히 폰 슈타인베르그가 신대륙에 가 있는 막내 딸을 보기 위해 건너갔다는 얘기도. 리오넬의 표정변화를 살피던 세스티나가 다시 웃었다.
"모르진 않나보네."
"그게."
"응, 그 분가의 가주가 나."
태연하게 웃으며 세스티나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사람은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게 아니라니까? 리오넬도 그렇고 파렐도 그렇고. 그래도 리오넬은 썩은 물은 아니니까 괜찮아.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든 리오넬을 보며 세스티나는 입술 끝만을 올려 웃었다. 그리고 남작 저택쪽을 바라보며 눈가를 살며시 좁혔다.
"저 썩은 물은 아마 제가 원하는 걸 평생 이루지 못할 거야. 바이런에서도 아무것도 못 이룰거고."
그 말은 예언이라기보단 이미 정해진 미래처럼 들렸다. 리오넬은 약하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성격이 나쁘군."
"칭찬 고마워. 저택은 오슈에 있어. 가서 파파랑 오빠들도 소개시켜 줄게."
"..... 파파라면."
"리히트 공작 루드비히 리히트 폰 슈타인베르그."
역시, 신대륙에 건너갔다는 게 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바이런에 오기 전 멀찌감치에서 한 번 본 기억이 있는 정도인 본가의 당주를 만나게 될 생각에 리오넬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세스티나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 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배 쪽으로 향했다. 코임브라로 향하는 배. 리오넬은 그 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 그리고 집에 가서 파파한테 혼납니다. 네. 그리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일을 치는데...................:)
+ 생각난 김에 찍은 리오넬 직업스킬
상태이상 해제 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