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연전기 모드라 연전기 연성일 것 같지만 사실 전혀 아님.
"... 뭐?"
"렌지 오빠가 스즈무라 선배를 데리고 있는 게 정말이냐고 물었는데?"
야나기 렌지는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눈 앞에서 음료수를 홀짝이며 태연히 묻고 있는 저 아이에겐 어지간한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야나기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벌써 10년 이상을 알고 지낸 사이인데다, 자신은 물론이고 저 아이를 둘러싼 주변인들이 주변인들인지라 어리지만 눈치 하나는 빠른 아이였으니까. 그 점이 평소엔 몹시도 자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였지만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있는 상태에서 그걸 실감하는 건 썩 기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아아. 내가 데리고 있다."
"스즈무라 선배, 강도한테 납치되어 행방 불명이라고 들었는데, 렌지 오빠가 한 일?"
"... 아아."
"그래? 왜 그랬어?"
달각, 하고 맞은편에 앉은 히즈키의 음료잔 안에 든 얼음이 맞부딪쳤다. 잔을 들어 흔들때마다 유리와 얼음, 얼음과 얼음이 부딪쳐 작게 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야나기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모금을 넘겼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소유물'을 내가 갖고 있는 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스즈무라 선배, 렌지 오빠한테서 떨어지려고 했던 것 같았는데."
"그래서 데려다 놓은 것 뿐이다."
'흐응'하는 답변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반응을 보인 히즈키는 한동안 아무말도 없이 음료만을 홀짝였다. 야나기는 그런 그녀를 말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납치감금이라는 사실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할지 어째야 할지. 이런 일과는 전혀 관계 없이 지내게 하고자 굳이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하는 번거로운 짓까지 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의 상관 - 사카키는 하나뿐인 외동딸을 제 곁에서 떨어뜨려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현재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원했던, 평범한 아이와는 전혀 거리가 멀게 자란. 하나 다행이라면 이런 것에 익숙해 진 것 외엔 지극히 평범한 학교 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또래 여자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연애도 하고 있다는 것.
"소중하지 않아?"
"... 하아?"
"얘기 들었어. 엉망이라며. 전혀 소중하게 다루지도 않고."
"왜 소중히 대해야 하지?"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그 쪽이 날. 난 아무래도 상관 없다만."
"그럼 되돌려 놔도 상관 없잖아."
"그 땐 어땠을 지 몰라도, 지금은 내가 없으면 살 수 없을테니까."
자신의 손이 닿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공황발작이라도 일으킬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물들여 놓았다. 히즈키가 말하는 '스즈무라 선배', 스즈무라 린은. 처음엔 벗어나려 했을 지 몰라도, 이젠 벗어난다는 사실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어딘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원하는 것은 그저 자신 뿐. 그렇게 만드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망치려 했던 것이 최후의 발악이었을테니까.
"렌지 오빠는?"
"난 아무래도 상관 없다만."
"그래?"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차를 홀짝이던 유키무라와, 그런 유키무라와 무슨 얘기를 하러 온 것인지 찾아와선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던 아토베의 시선이 히즈키 쪽으로 향했다. 세 오라버니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태연히 음료수만을 홀짝이던 히즈키가 빙그레 웃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입술은 웃지만 눈동자는 절대영도. 렌지는 이상할 정도로 오한을 느끼며 아직 온기가 남은 찻잔을 쥐었다.
"그럼 잘됐네. 스즈무라 선배 나한테 빌려줘."
".... 뭐?"
'쿡'하고 유키무라가 웃었다. 아토베 역시 픽 웃으며 고개만을 작게 내젓고는 다시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렌지는 갑자기 나온 '빌려달라'는 말에 잠시 눈을 깜박였다.
"히즈, 그게 무슨."
"없어도 상관 없다며, 렌지 오빠는. 그러니까 오빠 걸 좀 빌려달라고. 스즈무라 선배. - 뭐야, 안돼? 안되면 세이 오빠나 파파한테 얘기해서 실력행사로라도 빌려갈건데?"
"세이이치가 그런 걸..."
"히즈가 원하면 그래도 돼."
웃음기 어린 대답이 바로 이어져 나왔다. 렌지가 당황하여 그 쪽을 바라보았지만, 말을 꺼낸 장본인은 태연한 얼굴로 여전히 홀짝이던 찻잔만을 내려놓았을 뿐이었다.
"잠깐 세이이치, 이건 내가 결정할 일이고..."
"뭐야, 나한텐 못 빌려주는 거야? 흐응, 그 정도로 소중한 거라면 잘 다뤄야지. 막 다루는 거면 좀 빌려줘도 상관 없잖아?"
"... 내가 안된다고 하면 어쩔건가."
"방금 말했듯이 실력행사."
생글생글 웃으며 '어쩔거야?'라고 턱을 괴고 자신을 바라보는 히즈키에게 딱 잘라 '안돼'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야규 뿐이리라. 그나마 그 야규도 그녀의 건강 상 문제가 생길법한 일 외의 문제에선 자신과 마찬가지로 거절할 수 없겠지만. 자신이 그녀에게 말했던대로 '소중하지 않다'면, 야나기 렌지의 안에서 꽤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히즈키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게 자신의 직속 상관인 유키무라가 선뜻 허락하고 뒤를 밀어주는 사안이라면 더더욱.
".... 폭거라고 생각 안하나, 히즈."
"응."
한숨섞인 작은 항의에도 눈 앞의 아가씨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태연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조금 남은 음료수를 마시고는 의자에 기대며 웃었다. 팔짱까지 낀 채,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로운 모습에 야나기는 쓰게 웃었다. 하긴. 언제 사적인 일에 있어서 저 아이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던 일이 몇이나 있었던가.
"엄연히 폭거다만."
"하지만 세이 오빠랑 케이 오빠가 그렇게 말했는걸."
이름이 거론된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하나뿐인 '아가씨'에게 향했다. 그리고 장본인은 야나기를 똑바로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내 손에 쥐어진 권력은 휘두르라고 있는 거라고. - 휘두를 수 있을 때, 휘두르고 싶은 때, 내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거라고."
*
사적이고 조금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이 쪽 멤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아가씨.^^....
장본인인 야나기에겐 전혀, 요만큼도 사소한 일이 아니겠지만 어나더에겐 사소한 일임.^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