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 협박범 진술서 번역
떴더라구요.
워낙 길어서 읽기 불편해서 개인적으로 차분히 읽어볼 겸 발번역 해 봤습니다. 블로그에 옮기면서 오타를 가볍게 수정한 것 외에는 트위터에 한 번 올렸던 그대로.
* 안 붙여둬서. 원문 주소. http://bylines.news.yahoo.co.jp/shinodahiroyuki/20140315-00033576/
'쿠로코의 농구' 협박사건의 범인인 와타나베 히로시라고 합니다. 의견 진술의 기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소되지 않은 사안도 포함하여 '쿠로코의 농구' 협박사건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위력업무방해사건은 전부 저 혼자 하였습니다.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공소하지 않을 것과, 실형판결을 받아 복역하게 되는 경우에는 가석방 신청을 하지 않고 형기가 끝날 때 까지 복역할 것을 이 자리를 빌어 선언합니다.
조사에 관하여, 자백의 강요나 폭력적인 단어에 의한 위압 등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형사와 검사에게 바라지도 못한 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는 '상복의 사신은 무서운 형사에게 엄격한 취조를 받아서 울상이 되어 있겠지. 꼴 좋다www'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취조는 민주 경찰, 민주 검사의 행위였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제 국적이나 민족적 아이덴티티에 대해 제멋대로인 억측이 인터넷 상에 범람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저는 부모님도 조부모님도 증조부모님도 일본인입니다. 귀화해서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일본인도 아닙니다. '쿠로코의 농구' 협박사건의 범인인 와타나베 히로시는 유감스럽게도 일본인입니다.
동기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련의 사건을 일으키기 이전부터, 제 인생은 더럽고 추하고 비참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만회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수단을 써서 사회에서 퇴장하고 싶다고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 죽이는 것을 안락사라고 합니다. 제게 빗대어 보자면, 구제할 방법이 없는 인생에 괴로워하며, 만회할 가능성이 없는 패배자 조의 와타나베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자살하려고 했다, 라는 것이 적절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사회적 안락사'라고 이름 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 다물고 저 혼자 멋대로 자살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실행하려 생각하던 시기에 공술조서에 쓰여 있는 제가 '손에 넣고 싶었지만 손에 넣지 못했던 것'을 전부 갖고 있는 '쿠로코의 농구'의 작가인 후지마키 타다토시 씨를 알게 되고, 인생의 차가 너무나도 큰 것에 아연해 져, 이 거대한 상대에게 적어도 한 대 날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의 범죄유형을 '인생격차범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제가 '손에 넣고 싶어도 손에 넣지 못했던 것'에 대해 열거해 보자면 죠치대학의 학력, 농구만화로 얻은 성공, BL계 2차 창작에서의 인기라는 3가지입니다. 또한, 취조에서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신주쿠 출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공판을 위해 필요한 사실관계는 모두 공술조서에 쓰여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상세한 사실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죠치대에 대한 제 집착에 관해, 제가 죠치대 출신에 대해서만 강렬한 콤플렉스를 안게 된 계기는 19년 전 사소한 치욕을 맛보았던 일에 있습니다. 농구만화와 2차 창작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31년 전에 동성애에 눈을 뜨고, 같은 해에 어머니에게 '넌 더러운 얼굴이다'라는 말을 듣고, 26년 전에 '세인트 세이야'의 TV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고 부탁했을 때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24년 전에 농구 유니폼에 대해 이상할 정도의 페티시즘을 품게 되고, 22년 전에 BL계 2차 창작 동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는 쌓이고 쌓인 경위가 있습니다. 또한, 신주쿠에 관해서는 16년 전에 자살하려 했을 때 JR 신주쿠 역 근처를 방황하고, 11년 전에는 JR 신오오쿠보 역을 돌아다녔던 일이 계기입니다. 어느 것도 하루 이틀 사이에 발생한 계기는 아닙니다. 인터넷 상에 떠도는 '쿠로코의 농구'의 열광적인 팬에 의한 팬감정의 폭주에 의한 범행설은 완전히 틀립니다. 그리고 새삼스레 말씀 드리지만, 제가 범행 초기를 중심으로 보낸 범행성명문에 후지마키 씨에 대한 원한을 시사하는 문구는 전부 거짓말입니다. 저는 후지마키 씨와 전혀 면식이 없습니다. 저는 후지마키 씨에게 어떠한 일을 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후지마키 씨에게는 전혀 죄가 없습니다. 이 사실은 확실히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생과 범행 동기를 밑도 끝도 없이 객관적으로 표현하자면 '10대와 20대 때에 제대로 된 노력도 하지 않고 나태하게 살아온 바보가, 30대가 되어 '인생 끝났다'상태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닫고 발광하다, 자신의 컴플렉스를 건드리는 성공자를 발견하고, 질투하며 자살의 동반자로 삼아 주마, 하는 얕은 생각을 갖고 날뛰었다'가 됩니다. 이것이 틀림없습니다. 실로 쓰레기같은 동기입니다.
그러나 제 주관으로 보면 틀립니다. 이전에 형무소에서 복역을 체험한 전 정치가의 옥중체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신체장애자인 수감자 동료에게 '우리 같은 장애자는 말야, 태어날 때부터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은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저는 신체장애자의 고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벌을 받고 있다'는 감각은 무척 잘 알고 있습니다. 제게는 그 벌로써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노력하는 일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도, 자립해서 살아가는 것도 허락받지 못했다는 감각입니다. 저는 한참 범행을 저지르고 있을 때에도 몇 번이고 '완전 연소 할 때까지 해 보자'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스스로를 고무시켰습니다. 그 벌에 의해 30대 중반이라고 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어떤 일에도 불타오르는 것조차도 허락받지 못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불탈 정도로 노력했던 것이 일련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인생의 종착점이 슬슬 명확해 지기 시작하던 나이가 되어서야, 자신에 대해 부조리한 벌을 가한 '무언가'에게 복수를 이루고, 그 후에 제 인생을 끝내고 싶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무언가'의 정체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고, 할 수 없이 자살만이라도 하려고 생각했던 때에, 그 '무언가'의 대신이 될 법한 것을 찾아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쿠로코의 농구'의 작가인 후지마키 씨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원하던 것'운운한 것은 후지마키 씨를 목표로 한 계기는 되었지만, 동기의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원인은 학교에서의 괴롭힘(いじめ)이었습니다. 저는 반짝반짝한 1학년이 아닌 닳을 대로 닳은 1학년이었습니다. 이 경위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씀드려도 수가 없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자신을 계속해서 벌주었던 무언가는, 이 때 괴롭히던 아이와 제대로 대응해 주지 않았던 부모님이나 담임교사에 의해 제 마음에 채워진 철창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새삼스럽게 분석해 봅니다.
저는 작년 12월 15일에 체포되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갑을 차 보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제게 있어서는 '괴롭히던 아이와 부모님에 의해 채워진 수갑이 구현화 된 것뿐이다'라는 인상이었습니다.
저는 범행의 최종 목적을 '쿠로코의 농구' 단행본과 그 외 관련 상품 전부의 판매 중지, 애니메이션의 방영 중지와 관련 이벤트의 중지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협박을 계속하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그것들을 한 순간이라도 달성한다면 범행 종결 선언을 하고, 사건을 끝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쿠로코의 농구'가 제 인생의 방법 없음을 제게 들이대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것에게 제가 만족 가능한 대미지를 안기는 것으로 저를 벌하는 '무언가'에게 한 방 먹였다는 기분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마음의 양식으로 삼아 남은 인생을 비참한 와타나베로 살아가던가, 자살해서 비참한 인생을 끝대던가 하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무척이나 절실한 동기로 사건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괴롭힘 당하던 아이였던 제가 괴롭히는 아이인 '쿠로코의 농구'의 폭력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다는 것이, 제 주관적인 의식입니다.
저는 도내의 거리에서 경찰청의 조사원에게 임의동행을 요구받았던 때 '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탓에 제가 게임 감각의 쾌락범이라는 설이 세간에 떠돌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것은 틀립니다. 저는 분명히 '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만, 그것은 제 인생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드린 말이었습니다. 저는 경찰에 체포당하던 시점에서 인생의 패배를 확정하고 선언한 것입니다. 일부 보도에서는 제가 '죄송합니다, 졌습니다.'라고 조사원에게 말했다고 보도 되었습니다만, 저는 절대로 '죄송합니다'등은 말한 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의 부분은 완전히 오보 또는 날조입니다. 끈질기게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이 사건을 결코 게임 감각 등으로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임상심리사가 신문에서 '좋아하는 캐릭터 운운'등으로 진상과는 전혀 다른 프로파일링을 내보이며 좋아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런 별 것 아닌 것이 아닙니다. 전문가도 사람이기 때문에 틀리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쪽이 틀렸기 때문에 범행 성명에 '틀렸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찔리니 감정적이 되어 반론했다'라고, 자기 능력에의 회의나 겸허함이 완전히 결여된 채, 수치를 남에게 덧씌우는 듯한 강변을 아무렇지도 않게 신문에 싣는 인물이, 임상심리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새삼 아연해 졌습니다.
제가 체포되고 이틀 뒤의 아침에 구류되어 있는 경시청 코지마치서에서 도쿄지검에 출발하려 했던 때엔, 경찰서 앞에 많은 보도진이 몰려왔습니다. 이 때 저는 웃고 있었습니다. 이것에 관하여 '유명해 졌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다'라는 것이 세간의 의견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카메라 플래쉬의 홍수를 받으며, ''무언가'에게 계속 벌받아 온 자신이 드디어 통치 권력에 의해 벌 받게 되는 건가'라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 밀려들었기에, 그에 의한 자조의 웃음이었던 것입니다. 다음날, 변호사가 뉴스 사진을 인쇄해 보여주었습니다만, 확실히 그 표정은 기분 나빴습니다. 사람에게 분노의 감정을 환기시키는 기분나쁨 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심상풍경과는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웃을 자격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 정도는 스스로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매스컴 관계자가 제가 그리코 모리나가 사건(*1984, 1985년에 코베를 중심으로 식품회사를 목표로 한 일련의 기업협박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는 설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정도의 각오를 하고 사건을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반성은 하지 않습니다. 반성할 정도라면 처음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죄도 하지 않겠습니다. 혹여 사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발끝에서부터 죄악감이 밀려들어, 몸에서 완전히 힘이 빠지고 눈앞이 새카매지고 아무것도 모를 정도의 감각에 빠져야만 사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체포되던 때부터 그런 심리상태에는 단 한번도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타입의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제 범죄의 힘이 부족해 '쿠로코의 농구'라고 하는 컨텐츠에 별 대미지를 입히지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책임은 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성, 사죄와 책임은 다릅니다. 책임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신이 일으킨 사건에 의해 발생한 금전적 피해를 변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피해금액 뿐만 아니라, 위자료라고도 할 수 있는 금액을 더해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저는 당사자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작년 10월에 학원제에 대한 공격예고를 죠치대에 보냈습니다. 이로 인해 죠치대학은 경비체제를 강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약 50만엔의 경비가 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일으킨 방대한 사건 중 한 건이 이 정도입니다. 피해 총액은 얼마가 될 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총 수입액은 1000만엔이 되지 않습니다. 연수입이 200만엔을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월수입이 20만엔을 넘은 적도 몇 번 밖에 없습니다. 제게는 금전적인 책임을 지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저로서는 범죄로 인해 평생을 걸어도 갚을 수 없는 손해를 입혔다면, 그 땐 목을 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형판결을 받고 형무소에서 복역을 끝내고 출소해서, 가능한 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방법으로 자살하겠습니다. 또한 제 죽음이 널리 퍼질 수 있는 수단을 쓰겠습니다. 역시 '범인이 죽었다'는 사실은, 제가 일으킨 범죄에 의해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안도하게끔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재범이 없을 거라고 안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하여 '감정의 보상'을 행하는 것 밖에 책임을 다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동시에, 제 목숨의 가치 따위는 없고, 제 죽음도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거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살에 대해서, 저는 자기중심적인 동기로 자살하고 싶은 것입니다. 제 연행에 쓰인 밧줄을 볼 때마다 목을 매고 싶어집니다. 이 순간에도 자살 시켜 주신다면 기뻐하며 목을 매겠습니다. 동기도 남자로서는 무엇보다도 멋없는 종류의 동기이고, 그것이 드러나 버렸기 때문에 더는 부끄러워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는 '졌습니다'라고 말하고 제 인생의 패배 확정을 선언했습니다. 즉 제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살고 있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습니다. 유치소와 구치소와 형무소는 자살이 금지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제게 내려질 실형판결의 형량의 길이를 '자살권을 박탈당하고, 자살을 보류당하는 기간'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취조에서 형사나 검사에게 '사회 복귀'라고 하는 단어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듯 형무소에서 출소 후 바로 자살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복귀는 하지 않습니다. 범죄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회에 폐를 끼치는 것입니다. 그 폐가 한도를 넘어선 범죄자를 사회에서 영구추방하기 위해 무기징역이, 세상에서 완전히 추방시키기 위해 사형이 형벌로써 존재합니다. 저는 결과적으로는 큰 죄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명백히 사회의 허용한도를 넘은 사건을 일으켰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직업절도범의 재생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저 같은 것이 사회복귀해서는 안되고, 그것을 허용하는 무른 사회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취조에서 형사가 농담 삼아 '출소하면 글이라도 써 보면? 상복의 사신의 이력을 살리려면 그거 밖에 없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웃기지 마! 난 더는 뭘 말하거나 쓰거나 할 자격이 없는 인간이라고!'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만, 다물고 있었습니다.
조금 이야기가 바뀝니다만, 이 사건에 대해 '언론의 자유에 대한 도전'이라는 논평을 체포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언론의 자유'는 국가권력에 대한 자유를 가리키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국가 권력이나 그것을 배경으로 한 특수한 압력단체의 구성원도 아닙니다. 설령 언론의 자유에 도전하는 주체가 개인이라고 하고, 그 개인에게서의 자유라는 의미로 '언론의 자유'라는 개념이 있다고 합시다. 그래도 저는 '언론의 자유'에 도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내용이 마음에 안드니 책을 철거해라'라는 요구가 있었다면, 그것은 확실히 '언론의 자유'에의 도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협박장에서 무차별살해를 암시했습니다만, '쿠로코의 농구' 작품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언론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관리의 방법의 문제입니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쿠로코의 농구' 단행본의 판매를 보류했던 서점이 '언론 탄압의 가해자'라고 비판받고, 판매를 계속한 서점이 ''언론의 자유'의 옹호자'라고 칭찬받는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반복하지만, 이것은 정신이상자에 대한 대응을 둘러싼 위기관리의 문제입니다. 덧붙여 체포되었기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지만, 저는 ''언론의 자유'의 옹호자'라고 칭찬을 받은 대형 서점 체인에 방화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쿠로코의 농구'의 단행본을 매장에서 철거한 서점에 대한 협박사건으로는 입건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철거한 서점이 입건에 소극적이어서 피해 조서의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단행본의 철거는 일본의 출판역사에 남을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공판의 도마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에서는 부디 적극적으로 입건 시켜 주길 바랍니다.
형량에 대해서, 저는 엄격하게 처벌받아야 하고 그것을 절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바라는 형벌은 사형입니다. 저에 대한 형벌이 최고 징역 4년 6개월이라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구내라고 하는 공공 공간에 독가스를 뿌리고, 편의점의 상품진열대라고 하는 불특정다수의 인간이 손을 뻗을 수 있는 공간에 독이 들어간 식품을 놓았습니다. 이것은 공공위험죄 입니다.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고, 저 역시 나오지 않게끔 했습니다만, 저를 무기징역도 사형도 시키지 않는 일본의 형사사법에는 큰 결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죠치대의 사건은 살인미수로, 독이 든 웨하스 사건은 그리코 법으로 입건되었어야 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농담입니다만, 저로서는 '쿠로코의 농구'라고 하는 컨텐츠에 대한 살인미수가 제게 가장 잘 어울리는 죄가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대한 표현규제추진의 근거로 '캐릭터의 인권'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으니, '쿠로코의 농구'의 전 캐릭터를 대표하여 주인공 쿠로코 테츠야에 대한 살인미수를 적용하는 것도 콜드 잽, 이 아니라 쿨 재팬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인다워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확실히 저는 쿠로코 테츠야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생각합니다. 농담은 그만두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런 기분 나쁜 새끼는 사형 시켜 버려도 좋잖아!'라는 기분입니다.
일명 '패배조'에 속한 인간이, 성공자에 대한 질투를 동기로 범행을 저지른다는 유형의 사건은, 어쩌면 이후의 일본에서 빈발할지도 모릅니다. 글로벌 경제체제의 확대에 의해, 전 국민이 중산층이라는 의식이 붕괴하고, 국민 간의 격차가 명확해지고 있는 현재입니다. 일본은 더는 동서냉전하의 고도성장기 같은 케인즈 식 경제정책을 채용하는 체제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격차가 벌어지든 와타나베가 넷우익화 되든, 신 자유주의적인 경제, 사회정책이 차츰 시행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형사재판에서 가장 악질적인 동기는 이욕(利欲:이익 욕망)목적입니다. 저로서는 이 재판에서 '성공자의 발목을 붙잡으려고 하는 동기는 이욕목적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악질'이라는 결론을 인용하여, 저를 단죄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재판소에서는 판결로 그것을 전면적으로 지지해 주길 바랍니다. '불행의 동반자라고 하는 동기는 이욕목적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악질'이라는 판례를 만들어, 그것을 법조계에 합의 형성해 주시길 바랍니다. '국책조사'라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만, 모처럼이니 이 사건의 판결을 '국책판결'로써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막말로 하자면, 저같이 더럽게 생긴 녀석이 성공한 잘난 사람의 발목을 붙잡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일본 사회에 있어서도 '불행의 동반자형 범죄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 한다'라고 하는 사법의 의지를 판결로 표명해 주십시오. 적어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처벌받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마음 편히 형무소에서 복역할 수 없고, 출소 후에 마음 편히 목을 맬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의 일본사법으로는 저를 벌할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유치소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다른 유치자들과 사이좋게 이야기 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람과 제대로 오랫동안 이야기 해 본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적어도 과거 10년간은 없었습니다. 젊은 유치자들과 이야기 하며 '이렇게 귀여운 남동생이 있었더라면, 난 일을 저지르진 않았을텐데.'라던가, '이렇게 밝고 멋있고 잘 어울려 주는 친구가 어릴 적에 있었더라면, 내 인생도 바뀌었을텐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간관계는 체포 전보다 충실해 졌습니다. 식사도 설탕, 소금, 기름기가 적은 음식 등 건강에 좋은 것으로 세 번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습니다. 제가 하루 세 끼를 제대로 먹는 생활을 한 것은 20년 만입니다.
또한, 형무소에서의 복역도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적어도 속세에서처럼 인생의 격차를 제게 들이대는 존재와는 만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괴롭힘이 있어도 형무관들은 제 부모님이나 초등학교의 담임교사보다는 제대로 대응해 주겠지요. 형무소의 생활은 자유나 존엄이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게는 그건 속세에서도 같았기 때문에,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또한 이번 체포를 둘러싼 보도에 의해, 저는 모든 일본인에게 깔보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만, 제 주관으로는 그건 체포 전에도 마찬가지였고, 그게 그저 현저해 진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전혀 고통스럽게 느끼지 않습니다.
체포 3개월 쯤 전부터 저는 36살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물론 남자입니다. 좋아하게 된 것은 남성 그룹입니다. 체포 전에는 그 그룹에 대해 쓰인 블로그에 매일같이 다녔고, 정보를 얻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울까 하고도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신병이 확보된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써서 그 그룹의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체포당한 직전에는 '내 최애인인 홑꺼풀 왕자는 더는 만날 수도 없고, 노래도 들을 수 없고, 활동 정보도 쫓을 수 없는 건가'라던가 '그 사람들이 사는 별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등을 생각하며 슬퍼졌습니다만, 마음속에서 이별은 끝냈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또한 요 10년 동안 저는 중증의 인터넷 의존증 상태였습니다만, 지금은 딱히 인터넷을 하고 싶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건에 대해서 인터넷 상의 반응에도 더는 흥미가 없습니다. 즉 저는 속세의 오락에 미련이 없습니다.
애당초 제대로 취직한 적도 없고, 체포 전의 일도 일용직 파견이었습니다. 저는 잃어버려 안타까운 사회적 지위가 없습니다.
또한 가족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타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영업을 하고 계십니다만, 제 사건 탓에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에 관해서는 죄송한 기분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멋지게 복수를 해냈다고 생각되어 만족하고 있습니다. 저와 어머니의 관계는 이런 것입니다. 다른 친척과도 소원하여 어울리는 일이 없습니다. 물론 친구도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애인이 있던 적이 없습니다. 그 쪽의 프로에게 돈을 쓴다는 수단을 포함하여 성교조차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애인이 없던 기간 = 동정 기간 = 연령입니다. 저는 인터넷 용어로 말하자면 '마법사'입니다. 제 지어낸 성명문을 진짜로 받아들인 앞에 말한 임상심리사가 트위터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운운'등을 트윗한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요 15년 사이에 살인사건이나 교통사고의 피해자 유족이, 자신들의 고통이나 슬픔이나 분노를 미디어에 호소하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그 유족들은 저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입니다. 유족들은 불행하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지만, 잃어버리기 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습니까. 제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즉, 제게는 잃어버려 아쉬운 인간관계도 없습니다. 저는 유치소에서 빌린 스웨터를 입고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만, 그것은 즉 제게는 공판용의 제대로 된 의류를 가져다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저는 자기연민에 빠져있진 않습니다. 오히려 쓸모없는 인간관계가 없는 것을 홀가분하다고 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무척이나 마음이 편합니다.
그리고 죽고 싶기 때문에 목숨이 아깝지도 않고, 사형은 대환영입니다. 저같이 인간관계도 사회적 지위도 없고, 잃어버릴 것도 아무것도 없기에 죄를 범하는 일에 심리적 저항이 없는 인간을 '무적의 인간'이라고 넷용어로 표현합니다. 앞으로의 일본 사회는 이 '무적의 인간'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본 사회는 이 '무적의 인간'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또한 '무적의 인간' 범죄자에 대한 효과적인 처벌방법을 형사 사법 행정은 심각하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길게 말씀드렸습니다만, 결론은 제겐 엄벌을 내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회한에 잠기는 듯한 일들을 말씀드렸습니다만, 객관적으로는 크게 괴롭힘 당하지도 않았고, 부모님의 저에 대한 행동도 버릇을 들이기 위한 범주에 드는 것으로 학대는 아닙니다.
유치소에서 같은 방이 되었던 저와 동세대의 남성이 '인생이 끝났는지 아닌지는 자기 마음먹기 나름이잖아.'라고 종종 말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자기애가 강하고, 나태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역경에 맞서는 강한 마음이 전혀 없고, 피해자 의식만이 강하고, 범주의식이 결여된 손 쓸 방법이 없는 인간인지는, 누구보다도 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부모님이나 자라온 환경에 책임을 전가하고,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정신적 승리법을 그만 둘 생각은 없고, 그만 둘 수도 없습니다. 일본의 국제사회에 있어서의 경제적 지위의 하락과 함께 이상할 정도로 '세계로부터 칭찬받고, 멋있다고 동경의 대상이 되는 일본'상이 선전되기 시작해, '일본은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국제적 비판을 받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그것들은 전부 반일 컬트 트라이앵글이라고 하는 특정 아시아 삼국의 반일 프로파간다나, 그것에 호응하여 움직이는 반일 좌익 매스컴에 의한 편향 날조 보도가 원인'이라고 하는 논리만으로 국제관계를 전부 이해하려고 하는 정신적 승리법이 국민 여론에 만연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저는 '해외의 반응'을 모아놓은 블로그를 보아도, 조금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겐 앞으로 '지금부터'는 없습니다. 저는 재생의 가능성도 전혀 없습니다. 제게는 '죽음 또한 사회 공헌'이 아닌 '죽음만이 사회 공헌'이라고 하는 단어가 딱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써온 원고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지성의 파편조차 느껴지지 않는 실로 추한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는 전 수상이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지역 제일의 진학고에 입학했습니다만, 그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능력에 어울리지 않는 학교에 들어간 것이 진심으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저, 모교의 수치가 된 것에 관해, 모교에 대한 죄송함이라는 기분은 전혀 없습니다. 요 근래 이런저런 OB의 경사가 이어졌기 때문에, 거기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반복하여 말씀드리지만, 저 같은 쓰레기는 어떻게 해서라도 엄벌에 처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지금의 솔직한 심경을 말씀드립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생 살 수 있을 것 같냐! 빨리 죽여라!'
일본 전체의 전도유망한 소년들이 주눅 들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비뚤어 지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밝고 멋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기원하며 끝내겠습니다.
의견진술의 기회를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상복의 사신''괴인 801면상''흑보대' 와타나베 히로시
* 그리고 다 쓰고 나서 아는 언니랑 말하다가 얘가 최근 핥기 시작했다던 그룹이 엑소는 아닌가 하는 얘길 했습니다..... 일본쪽에서도 그렇게 예상하고 있는 듯.
* 최애인이라고 번역한 부분은 사실 리얼로 俺の嫁라고 쓰여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