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가 보이는 스탠드에 앉아 물끄러미 비어있는 코트를 바라보던 니오는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해가 거의 다 져서 어둑어둑한 가운데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상대. 니오의 입가가 약간 누그러졌다.
"지금까지 뭐하고 있다가 이제 가는 거야?"
"그러는 니오 군이야말로. 부활 다 끝나지 않았어? 아까 겐이치로가 가는 거 봤는데."
"아아.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가을 바람이 서늘하게 뺨을 스쳤다. 그러고 보니 연습이 끝나고 아직 라커에도 들르지 않아 레귤러 복인 채였다. 시선을 다시 코트로 돌리자, 인기척이 다가와선 옆에 앉았다. 니오는 그 쪽으로 흘끔 시선을 주었다가 어깨만을 가볍게 으쓱 했다.
"집에 가던 중 아니었어?"
"응. - 니오 군은? 안 가?"
"조금 더 있다가."
"오늘 좀 춥잖아. - 안 추워?"
"생각보다 따뜻하니까, 이거."
여미지 않은 져지를 가볍게 팔락여 보이자 옆에 앉은 소녀는 '흐응...' 하고 긍정인지 부정인지 애매한 대답만을 흘렸다.
흘끔, 다시 눈동자만을 돌려 상대를 바라본 니오는 턱을 괴곤 아예 그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아키노 카나. 2학년 B반. 야규, 야나기와 같은 반이어서 보는 일은 잦았다. 야규를 찾아가면 자리가 가까운지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서 둘이 얘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야규와 야나기, 그리고 아키노 셋의 공통적인 취미가 독서인 탓인지, 종종 그 대화에는 야나기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한 명 더 덧붙이자면 소꿉친구였다는 사나다도 가끔 보이곤 했다. 매사에 엄격한 사나다지만 아무래도 오랜 소꿉친구 앞에서만큼은 그렇게까지 엄하게 굴지 못하는 모양이어서, 사나다에게 호되게 혼날것 같은 상황이 되면 키리하라가 피신 오는 곳도 2학년 B반이었다.
딱 한 번, 야규를 찾아 교실로 갔다가 혼자 있는 그녀를 본 기억이 있었다. 늦은 봄 무렵이었다. 유난히 날씨가 좋아 마루이가 수업을 빼먹고 놀러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가 유키무라에게 한소리를 들었을 정도였다. 활짝 열린 창문 밖으로는 끝물인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낮이었다. 비춰드는 햇살이 아키노의 갈색빛 머리카락 위로 산산히 부서져 내렸다. 햇빛이 눈부신 듯 눈가를 약하게 찌푸리면서 창밖을 바라볼 때, 마침 불어 든 바람에 흩날린 벚꽃 잎이 펼쳐진 책장이며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 내려 앉았다. 손바닥 위에 엷은 분홍빛의 꽃잎을 올려놓고는 읽던 책을 덮을 생각도 않고 바라보다가, 흩날리는 벚꽃에 홀린 듯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 처럼 흘러갔다.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를, 니오야 말로 홀린 듯 바라보다가 야규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었다. 야규와 얘기를 하다가 흘끔 다시 창가 자리를 바라보았을 때엔, 이미 바람은 멎어있었고 아키노는 언제나처럼 책장을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한순간 환상이라도 본 것 처럼 평소의 그녀로 돌아와 있었지만, 그녀의 책상 위에 내려앉아 있는 벚꽃잎이 그것이 환상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듯 했다.
*
"니오 군?"
퍼뜩, 그 때 처럼 정신이 들었다. 완연히 어두워 진 가운데 희미하게 남은 노을빛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니오는 눈 앞의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이대로라면 경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니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툭툭, 레귤러 복에 묻은 모래를 털어냈다.
"이제 가려고?"
"슬슬. - 따라 올래?"
"... 에?"
아직 앉아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니오는 픽, 웃었다.
"좀 춥다며. 마실 거라도 사줄테니까. - 그대로 돌려보냈다간 사나다가 잔소리 할 게 뻔하고."
속눈썹이 긴 눈이 두어번 깜박였다. 내밀어진 손을 말끄러미 바라보던 아키노는 조금 웃으며 곧 그 손을 잡았다.
" - 겐이치로가 혼내?"
"썰렁한 데 널 붙잡고 있었다고. 들키면 혼나겠지."
"내가 그냥 있었던 건데."
"그걸 그냥 돌려보냈다고 혼날테니까."
부실 쪽으로 향하며 니오는 제 손에 쥐어진 아키노의 손을 조금 세게 잡았다.
+ 조금 풋풋한(?) 얘길 써보고 싶었습니다. 별관에서 벌어지는 얘긴 하나도 안 풋풋하거든!!!
+ 2학년 때라는 설정. 유키무라는 아직 멀쩡합니다. 사나다도 그래서 덜 딱딱함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