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단 얘기. 음. 뭐 사실 공공연한 네타라 있다고 하기도 뭣하고 ㅋㅋㅋ 없다고 하기도 뭣하고...
엔딩&8월 이벤트 네타라고 해야 하나? ㅋㅋㅋ 암튼 그런거 있음 ㅋㅋㅋㅋ
여섯번 째의 만월이 가까워 오던 8월의 끝무렵이었다. 포트 아일랜드 역에 있는 대형 영화관에서 영화 축제가 한참 진행중이라는 얘기를 우연히 들은 테오도어는 잠시 고민했다. 영화? '정의'는 알고 있었지만 사실 한 번도 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영화 '축제'? 테오도어의 지식 범위 안에서 영화와 '축제'의 정의가 맴돌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섞일 수 있을까.
바깥 세계와의 접촉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예외가 있었다. 바깥과 벨벳룸을 이어주는 유일한 존재, 그의 단 하나뿐인 손님을 통하는 것. 혹시나 싶어 테오도어는 조심스레 벨벳룸의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그의 손님과 함께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도 되는지. 허락은 의외로 쉽게 떨어졌다. 그의 손님이 허락한다면. 단,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돌아오기 전에는 돌아와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었지만.
테오도어의 연락에 전화 너머의 그녀는 잠깐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전화 너머로 선선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벨벳 룸 밖으로 나서며 테오도어는 잠시 생각했다. 지난번, 신사에 안내받았던 때 이후로 매번 강해지기만 하는 이 감정의 파문을.
그 날의 테마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비극적인 사랑? 테오도어는 잠깐 고개를 갸웃했고, 옆에 선 그녀는 그런 테오도어를 올려다 보면서 물었다. 진짜 괜찮겠어? 그 물음에 테오도어는 되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그 물음에 잠시 대답이 없던 그녀는 곧 어깨를 가볍게 으쓱 하고는 테오도어의 손을 잡아 끌었다. 들어가자, 시작하겠어. 8월의 더위에도 그녀의 손은 조금 차가웠다. 손을 맞잡고 처음으로 들어선 '영화관'은 바깥의 후덥지근한 공기와는 대조적으로 서늘했다. 그녀가 자신의 몫까지 표를 두 장 사고 좌석을 찾아 안내해 주는 동안, 테오도어는 영화관에 온 다른 사람들의 조합을 보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기울였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응?"
옆자리에 앉은 그녀는 테오도어의 질문을 들으려는 듯 몸을 조금 기울였다. 상영관에서는 조용히. 밖에서 들어오기 전에 봤던 안내판을 기억해 낸 테오도어는 그녀의 방향으로 역시 몸을 기울여 속삭이듯 물었다.
"원래 영화관은 항상 남자와 여자가 한 쌍으로 오는 겁니까?"
"......"
옆자리에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테오도어는 자세를 바로하며 고개를 기울였지만 그녀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뭔가 잘못된 질문이라도 한 것일까 싶어 다시 말을 꺼내려는 차에, 짤막하게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녀 역시 자세를 바로하며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상영관이 어두워 지는 가운데 언뜻 보인 귓가가 붉어져 있었다.
영화관을 나왔을 땐 하늘 한 쪽이 조금 어두워 져 가는 시간이었다. 테오도어는 그 날 본 영화들을 가만히 떠올리며 입을 열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녀는 조금 울었던 듯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테오도어는 가만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눈가의 물기를 훔쳐낸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잠깐 뭐라도 마실까? 아니면 바로 돌아가 봐야 해? 테오도어는 그 질문에도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테오? 그녀가 손을 맞잡아 오며 부르는 목소리에 테오도어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조금 정도는 더 있어도 괜찮겠지요. 그 대답에 그녀는 약간 웃었다.
역 한 쪽에 있는 자판기에서 차가운 음료수를 사서는 광장 한 쪽 벤치에 나란히 앉은 이후에도, 테오도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옆에 앉은 그녀도 별 말 없이 음료수를 홀짝일 뿐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 계속 테오도어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헤어지던 연인. 한 사람의 죽음. 그 시체 앞에서 오열하던 사람. 누군가는 죽고, 한 사람만이 홀로 남겨지고, 남은 사람은 죽은 이를 그리던 결말. 테오도어는 조금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있는 그의 손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계약'을 한 사람. 져야만 할 책임을 지기로 약속한 사람. 테오도어는 그 계약의 끝을 알고 있었다. 그 끝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지는 모르지만, 상대해야만 하는 운명의 크기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시간의 흐름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커다란 대가는, 그 시간이 영원히 멎는 것일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계약 또한 그런 형태로 끝을 맺게 되겠지. 그건 - 곧 '죽음'이었다. 그 단어를 떠올린 순간 심장이 아려왔다. 그 고통에 눈가를 약하게 찌푸리자, 옆에 앉아있던 그녀가 테오도어의 안색을 살피듯 들여다 보았다. 테오? 왜 그래? 그 목소리가 닿자 고통은 한층 더해갔다. 조금 몸을 숙이자, 옆에 앉아있던 그녀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테오? 어디 아파? 그 질문에 테오도어는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친 것도 아니고, 신체 내부에 갑자기 무언가가 침투했을 리도 없었다. 그저 갑자기, 그녀에게 찾아들 운명이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 뿐인데.
숨이 흐트러졌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 끝이 가늘게 떨렸다. 그 때, 그 손 위로 다른 손이 겹쳐졌다. 테오, 괜찮아? 돌아갈까? 걱정어린 목소리, 겹쳐진 손에 느껴지는 온기. 흐트러 진 숨이 막혀왔다. 시야가 흐려졌다. 뺨을 타고 무언가가 흘러내렸을 때, 테오도어는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무엇때문인지는 몰랐다. 왜, 지금 이렇게까지 눈물이 흐르는 것인지. 왜 이렇게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아픈 건지. 왜, 닿아오는 온기를 붙잡고 놓고 싶지 않은 것인지.
"죄송, 합니다 - 그러니까..."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 확실하지 않은 이유. 그것으로 그녀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지장을 주어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계약'만은 확실한 것이었다. 그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그녀가 계약을 깨게 된다면, 지금같은 만남도, 그 무엇도 허락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할수는 없었지만, 닿아오는 온기는 계속해서 계약의 결말을 상기시켰다.
"괜찮아, 응? 테오, 괜찮으니까."
그녀는 무엇때문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몸을 숙여 한 손은 테오도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쉴 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을 뿐. 뺨에 손 끝이 닿을 때 마다 눈물은 멎을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더 할 뿐이었다. 테오도어는 뺨을 닦아주는 손을 잡아 그 손바닥에 입술을 묻었다. 약하게 움찔,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늘 그랬듯 손을 빼지 않았다. 테오도어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입술에 닿아 있는 손은 작고 따스했다. 조금씩 고통이 잦아들었다.